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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라의 장구 프로젝트 III-비가 올 징조:A sign of Rain Review by 윤중강(평론가)

January 23, 2017

 

# 김소라 장고 프로젝트 Ⅲ 비가 올 징조 : A sign of Rain 
2016 문래예술공장 유망예술지원 MAP 선정작, 
(2017. 01. 13~!4. 문래예술공장) 

그간 연희공연의 아쉬움을 얘기한 후, 이번 공연이 갖는 의미와 성과를 짚겠다. 

(1) 연희, ‘신명’을 위해서만 존재하는가? 
많은 공연이 신명이라는 미명(美名)하에, 너무 에너지의 발산(發散)에 주력한다. 내 입장에서 보면 그렇다. 신명은 한국예술 중에서 특히 ‘연희’와 ‘타악’의 중요한 미학적 용어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으로 연희를 논하거나, 이것만을 지향하는 것은 무척 답답해보였다. 어쩌면 ‘신명’이란 (일괄적) 잣대에서 벗어나서 만든 작품이, 연희의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다. 전통연희(타악)으로는 ‘로맨틱’하고, ‘센티멘털’한 것을 표현할 수 없는 것일까? 

(2) 타악, ‘부드럽게’ 연주할 순 없을까? 
일반적으로 얘기할 때, (성악, 기악 연주자와) 상대적으로 비교할 대, 연희의 연주자들이 ‘작은 소리’에 대한 존중이 약한 것은 사실이다. (특정한 장소, 특정한 사람의 예이긴 하나) 연희자가 공연장에서, 이 악기에서 저 악기로 바꿀 때, 발상하는 소리가 있다. 이거 결코 작은 소리가 아니다. 그러나 연희자는 대개 ‘무신경’하다. 놓여 있는 징을 끌어다 놓을 때나, 장구를 옮길 때 발생한다. (조금 과장하게 말한다면,) (이런 걸 보는 입장에서) ‘저 사람은 저 악기를 사랑하지 않나?’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국악타악 연주자들이 ‘연주를 잘 한다’는 생각이 들어도, ‘연주가 섬세하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는다. 국악 타악연주자들 만큼 (교육현장이나 무대공연에서도) ‘호흡’을 강조하는 것도 드물다. 한국음악에서 있어서 ‘호흡’이 중요하다. 그런데 그들이 이렇게 ‘호흡’을 운운하는 것과 별도로, 그들의 호흡은 때론 가쁘고, 때론 거칠다. 이건 속주(速奏, 빠른 연주)에선 어쩔 수 없다고 얘기할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사물놀이가 등장한 이후 (발전되고 좋아진 것도 많지만) 일반적-보편적 호흡이 무척 가빠지면서 생긴 현상이라고 생각된다. 
멜로디가 없는 타악기 - 국악에서 쓰는 용어인 무율(無律) 타악기 일수록 - 섬세하고 부드러운 연주가 더욱더 음악을 입체적으로 보이고, 깊게 느껴질 수 있다. 

(3) 연희, ‘솔로’ 혹은 ‘듀오’론 어려운가? 
“연희는 마당에서 출발했다”. “연희는 공동체의 신명이다” “다수의 인원은 불가피하다.” 이런 전(前) 시대적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분께는 할 말이 없다. (이런 걸 바탕으로 꼭 ‘자기 말을 빙자한 남의 말’로 목소리 높이는 사람이 있다. 이젠 그런 사람들에겐 절대 댓구 안한다. 정말 에너지 낭비다. 그런 사람들 때문에, 내 생산적 에너지가 낭비되는 거다.) 

연희공연에서 종종 (농악과 같은 것은 별도로) “인원 대비 효과”가 낮은 걸 본다. 무대에 인원이 많다. 사람이 많은데, 그 인원들이 모두 제 역할(존재가치)가 있는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사물놀이라는 ‘네’명이라는 기본에 벗어나서, 솔로 듀오 트리오 형태의 공연도 분명 가능하다. 
그런 공연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아직 정착하지 못한 것 같다. 

(4) 연희, 어떻게 하면 ‘작품’이 될까? 
연희공연을 보고나서 만족도가 높은 공연이 꽤 있다. 그런데 보고나서 ‘작품’처럼 느껴지진 않는다. 한국예술의 가(歌), 무(舞), 악(樂), 희(戱)로 나뉠 때, 앞의 셋이 갖지 못한 강점을 희(戱)가 갖고 있다. 요즘의 연희계통의 공연에선, ‘놀이’로서 ‘공연’으로서 훌륭한 느낌을 받는다. 그런데 이게 하나의 ‘작품’이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하나의 공연이 ‘작품’(무대예술)이 되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기본조건들이 있다. 그런데 연희공연에서는 (유독) 그것이 미비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이런 또한 연주자들의 태도와도 관련이 있다. 연희는 ‘현장’과 ‘즉흥성’이라는 중요하다는 미명하에, 타 분야 아티스트에 비해서 ‘섬세함’ (기준과 취향에 따라 다르긴 하나) ‘세련됨’이 부족한 것을 보게 된다. 

이번 김소라 프로젝트는, 그간 내가 마음에 품고 있던 연희공연의 네 가지 ‘아쉬움’과 산뜻하게 결별한 수작(秀作)이었다. 위의 네 가지가, 김소라 장구 프로젝트에는 모두 ‘해당사항 없음’이었다. 타 분야의 공연예술 연행자와 평론가가 보아도, 크게 인정할 것들이 많은 공연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이 공연을 보고나서 “이건 ‘연희(장구)이기에 가능한 공연이구나!” 새삼 깨닫게 해주는 공연이었다. 

그럼, 이번공연이 갖는 공연의 특징은 무엇인가? 

(1) ‘장구’에 집중을 했다. 
대한민국에 장구를 잘 치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장구를 ‘섬세하게’ 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오랜만에, 장구를 ‘섬세하게’ 치는 사람을 보았다. 장구를 ‘편하게’ 치는 사람을 보았다. “김소라는 장구를 편하게 쳤고, 섬세하게 접근했다.” ‘궁(글)채’를 설장구처럼 잡았을 때도 그렇고, 동해안장구식으로 잡았을 때도, 그렇게 가락이 매우 자연스러웠다. 본인이 장구를 치면서 즐기려는 모습이 보였고, 관객도 그 가락을 즐기기를 바라는 모습이 전달됐다. 

대개 장구잽이들은 결국은 가락을 자랑하려 한다. (남성 장구잽이의 밑바탕에 흐르는) ‘승부욕’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김소라 또한 그랬는지 모른다.) 그러나 내게는 김소라의 장구는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속주’를 많이 집어넣어서 관객을 (괜히) 흥분시키지 않았다. 작가(화가, 수필가)가 어떤 대상(‘비’ 그리고 관련된 정서)에 집중하면서, 자신이 사용하는 매체(장구 및 타악)를 통해서 어떻게 잘 그려낼 수 있을까? 이런 것에 집중해서 만들어낸 ‘산뜻한’ ‘세련된’ ‘편안한’ ‘깔끔한’ 결과물이라는 게 전달되었다. 이런 그(녀)의 노력 덕분에, ‘장구’의 아름다움을 더욱 느끼게 되었다. 


(2) ‘스토리텔링’이 자연스럽다. 
‘장구 = 비’는, 이 계통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그런데 김소라는 심화시켰다. a. ‘비’오기 전 ~ ‘비’가 오는 상황 ~ ‘비’ 온 뒤, 이렇게 나눠서 접근했다. b. 비 또한 그 비오는 강도로 구분해서 느끼게 해주었다. 그가 타악(장구)로 만들어낸 비는, ‘이슬비’부터 ‘소나기’가지 스펙트럼이 있었다. 관객은 ‘영상’ (이 글에선 여기선 이렇게 언급 정도에 그치지만, ‘영상’ 좋다. 좋은 이유는 ‘오버’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 장구 = 비 라는 등식 속에서,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면서, ‘스토리텔링’을 만들어내는 좋은 역할을 한다. 무엇보다도 이 공연을 작품으로 승화시키는 세련됨의 역할을 아주 적절수위로 잘 해준다. (내가 능력이 있고, 작품을 만든다면 꼭 이 팀과 작업하고 싶다.) c. 끝으로 비가 내린다는 것을 정화, 곧 씻김으로 생각하고 마무리를 짓는 것도 산뜻했다. 

(3) 선율악기와 듀오를 통한 창작적 접근 

기존의 퓨전국악곡처럼 편하게 들을 수 있는 곡이면서도, 장구를 중심으로 해서 ‘생동감’이 살아있었다. 퓨전국악이 (신디사이저, 드럼 등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아서) 사운드가 크고 복잡하거나, 때론 한국적인 전통적인 정서와 유리되기도 한다. 이 작품은 기본적으로 ‘한국 장단을 바탕으로 변주, 재구성하는 것이기에 그런 점이 전혀 없었다. 
피리(오노을)와의 듀오, 25현가야금과의 듀오(임지혜)는, (퓨전국악곡을 선호하는) 방송(청취자)에서 들려줘도 모두 편하게 즐기게 좋은 곡이었다. 

(4) 현승훈 (Seung Hun Hyun) - 김소라 듀오 
업계 사람은 모두 아는 것처럼, 두 사람은 부부다. 이들의 듀오는 호흡이 좋고 빛났다. (오히려 좀 더 심층적으로 보면) 이미 솔리스트로서의 역량과 공연작품을 만들어가는 능력이 충분한 김소라를 남편(아빠, 애인, 파트너 등)과 같은 입장에서 ‘과잉’으로 잘 하려고 느껴졌다고나 할까? (이건 그냥 하는 소리고, ^^) 두 사람이 만들어낸 작품이 좋았다. 
현승훈은 버펄로드럼(인디언 드럼. 원래 인디언 드럼은 손으로 연주하는데, 현승훈은 스틱으로 다양한 사운드를 냄), 또 김소라의 로그드럼(그들의 생각에 ‘비’를 가장 잘 표현하는 타악기로 생각)을 적절하게 활동하는 게 인상적이었고, 성과가 컸다. 장구의 한 면과 로그드럼을 마치 장구의 ‘궁편’과 ‘채편’처럼 만들어가는 사운드는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매우 색다른 음향으로 들려왔다. 

(5) ‘비’를 모티브로 가져와서, 해학적인 연희(버나 연희)가 있었다. 
이번 공연에서, 중간에 산뜻하게 기분 전환을 해 줄 수 코너(?)가 있었다. 바로 김정운과 작업한, ‘버나’ “작품”이다. 이젠 연희에서 버나는 익숙하다. 대개 ‘재담’으로 끌고 간다. 이번 공연을 달랐다. 버나를 가지고, 장구를 중심으로 ‘작품’으로 만들었다. 김정운은 탈춤(무용, 마임)의 전통적인 사위를 바탕으로 해서 움직임을 만들어갔고, 여기에 김소리 - 현승훈의 타악이 함께 했다. 타악 장단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타악이 단순한 움직임의 반주 또한 아니었다. 
‘버나’가 비 오는 날에는 우산이 되고, 햇볕이 내리 쬐는 날에 양산이 된다는 재담에 바탕을 두고 만든 작품이다. (김정운의 움직임에 눈이 팔렸지만, 뒷 배경의 영상 속 그림체도 매우 인상적이다.) 이 작품은 사실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이다. 하늘을 바라보는 장면이다. 조명이 너무 빨리 꺼진 것은 아닐까? 뭔가 더 여운이 있었으면, 관객들은 거의 99%가 ‘강종지(强終止) - 강하게 끝난다는 것을 너무도 알려주는 전통타악 - 로 끝나는 국악타악공연과 다른 ’마무리
도 꽤 인상적으로 다가왔을 거 같다. 


(6) “섬세.소라” 
뭔가 이 공연을 보면서, 김소라(라는 장구 연주가)에게 ‘네이밍’을 해주고 싶었다. 좋은 게 생각이 나지 않는다. 현재로선 ‘섬세소라’라고 하련다. 장구를 가지고 매우 섬세하게 다가가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까지 장구 잘치는 사람을 많이 봐 왔지만, 이렇게 깨끗하고 투명하게 장구를 치는 사람은 많이 못 봤다. 난, 이런 장구를 기다려왔(는지 모른)다. 
이번 공연을 계기로, 장구가 더욱 깨끗하고 투명하고, 섬세하고 따뜻했으면 좋겠다. 장구가 화려하고 열정적이고, 강렬한 장구는 ‘너무, 많다’“  
장구가 실내에 들어온 이상, 실내에 맞는 사운드를 내야 한다. 실외에서 연주하는 타악을 달라야 한다. (다소 거칠게 얘기한다면,) 우리는 지금까지 실외에서 연주하는 실내에서 연주해도, 저게 우리 것이니까, 저게 타악이니까. 저기에 우리의 우수한 장단(리듬)이 있으니까. 저게 신명이니까 하면서, 이러면서 즐기기보다, 즐기려 했던 것이다. 
(더불어서, 남도 하는 상투적인 말이라서 정말 안하고 싶지만) “전통이 되면, 창작도 된다”는 사실을, 김소라가 그대로 증명해주었다. 그녀가 유지화명인 밑에서 오래도록 갈고 닦은 전통타악의 실력이 있기에, 이런 창작도 가능하다는 걸 확인한다. 그리고 그런 창작이 ‘겉도는’ 창작이 아니라 ‘뿌리 내린’(내릴 수 있는) 창작임을 확인한다. 

(7) 리스트 vs. 쇼팽  
예전 농악에선 그랬다. (설)장구를 치는 사람의 호흡이, 곧 관객의 호흡이었다. 그 안에서도 현란한 기교가 있었지만, 대개 ‘정겨운 가락’에 관객들이 ‘넘실넘실’ 잔잔한 흥을 즐겼다. 그런데 사물놀이 출연이후, 타악연주가 너무도 ‘기네스적’ 사고로 가는 것 같다. 현란한 기교 자랑하는 경우가 지나치다. 속주(速奏)를 남발한다. 
이런 비유를 해볼까? 지금까지의 장구잽이가 ‘리스트’를 지향했다면, 이제는 김소라와 같은 ‘쇼팽’이 되어야 한다. 어렵고 화려한 기교라기 보다는, 궁극적으로 서정(抒情)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다르게 얘기한다면. 기존의 장구가 ‘락’과 ‘팝’이었다면, 김소라의 장구는 ‘발라드’와 ‘(세미)클래식’처럼 들렸다. 
내가 이 글을 무척 길게 적었으나, 결국 내가 하고 싶은 한 마디는, 이 마지막 문장으로 집약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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