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단유희 Art.Music.Think.Meet
"장단은 유희다."
장단을 휘저으며 연주자는 즉흥과 변주를 넘나든다. 자연스러움과 부자연스러움 그리고 규칙적인 것 안에 불규칙적인 것이 어우러지는 장면을 함께하기 위해서는 창작자와 관객이 함께 호흡 (공감, 자아일체)할 때 비로소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장단이 지닌 유희적 성격이다. 일정한 틀에 따라 변화하고 그 안에서 연주자가 재미있게 놀 수 있을 때 비로소 이를 바라보는 관객은 즐겁다. 국악창작자 김소라 소식지 <장단유희>에서는 지금까지의 음악적 여정을 지나 '다시 돌아서 들어간다’의 뜻을 지닌 도드리 장단으로 부터 시작된다. 세상에 대한 관심과 존재의 즐거움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창작자로서의 진정한 나의 모습을 찾기 위한 여정을 한 장단 한 호흡의 글로 담아내었다.
ISSUE 1. 우도 콜렉티브의 탄생
우도 콜렉티브의 탄생
2022 전주세계소리축제 개막공연 가운데 정정렬 명창 x 우도 컬렉티브의 작품을 구성하며 뜨거웠던 여름을 기억한다. 소리축제 박재천 집행위원장님과 첫 통화에서 7명의 여성연희자가 호남우도 농악의 장단과 몸짓으로 정정렬 명창과 콜라보를 하는 장면을 이야기해 주셨는데 그의 들떠있던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하다. 나 또한 멋진 장면을 만들 생각으로 신이 나 있었지만 막상 첫 연습이 진행되며 만만치 않은 작업임을 깨닫고 이후 여러 번 징징거리던 장면들이 있었다.
국악계에 잘 알려진 것처럼 정정렬 명창은 1876년 전북 익산 출신으로 근대 5명창 중 한 명이다. 엇붙힘이라고 하는 장단의 기교를 극단까지 추구했다고 하는데 이는 세습 예인의 집안으로 명고 정원섭의 형이기도 했던 정정렬의 음악적 배경과도 연관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전해지고 있는 정정렬 명창의 짧은 눈대목 음원을 처음 받아 듣고, 상청으로 올라가는 쫀득한 성음 너머로 기가 막히게 장단을 이리저리 복잡하게 타고 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의 규격화된 장단의 박자 안에서 불리고 있는 소리꾼의 판소리와는 확실히 달랐음이다. 야무지고 고집스러우면서도 강직한 그의 성품을 목소리를 통해 상상해 볼 수 있었다. 만약 정정렬 명창의 소리가 정확한 박자 안에서 불린 소리였다면 장단을 연주하는 이들은 편할 수도 있었겠으나 그만의 새로운 더늠은 완성될 수 없었을 것이다. 마치 장단을 모조리 섭렵한 이후 장단에 무심히 올라타 극의 서사를 잘 전달하기 위한 시 김새에 오로지 집중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반면 연희를 새롭게 재해석할 때 전통과 현대의 흐름이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를 깊이 고민해야 했었다. 이미 완성도가 높고 오랫동안 발전해 온 농악의 개인놀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판을 구성하면서 농악 특유의 에너지를 분출하고 단체의 기량만을 선보이는 짜임새는 의미가 없을 것이란 생각을 했다. 연희자의 특징과 어느 지역의 농악을 다룰 것인지를 파악하고 모던함과 세련미 그리고 판소리와 장구만의 클래시컬한 조화에 집중하였다. 만약 경상도의 농악을 기반으로 판을 구성하였다면 이번 우도 컬렉티브와는 전혀 다른 색채가 나왔을 것이다. 더불어 세상의 요란스러운 소리에 익숙한 많은 귀들을 장구 장단과 소리만으로 설득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도 있었지만 클래식의 힘을 믿어보기로 마음먹고 연습에 돌입했다.
정정렬 x 우도 컬렉티브 작품에서는 호남우도 농악과 장구놀이를 중심으로 구성하였다.
1. 장구놀이 다스름 설장구 입장
2. 춘향가의 기생점고 도입 + 6명 장고잽이 차례로 입장
3. 오채질굿 48박 x 6장단
4. 우질굿 + 기생점고 중간 부분을 중심으로 받고 메기는 형식
5. 장구놀이 굿거리 + 기생점고 후반부
6. 장구놀이 열채 24박 장단으로 마무리
7. 어사출두 +장구놀이 자진모리.반삼채.연풍대.매돚이 순으로 진행된다.
오재질 굿은 지역마다 48박 혹은 49박의 형태로 전해지고 있는데 이번 공연에서는 48박으로 진행하였다.
특히나 어사출두 부분은 작업하기 매우 어렵고 까다로웠다. 왜냐하면 자진모리장단의 박자가 일정하지 않았고 이미 소리와 음원에 들어있는 고수의 북장단이 복잡했기 때문에 그 사이에 장고잽이 7명이 들어가 연주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리하여 과감히 연주를 빼고 몸짓과 동작을 넣어 음원의 소리와 북어 가락이 잘 전달될 수 있도록 하였다. 대신 연희자들은 판소리의 대사를 완벽하게 숙지하고 대사에 맞는 동작을 통일시키며 호남 농악에 등장하는 동작과 진풀이를 소개할 수 있도록 판을 구성하였다. 춘향가 박석 티 대목도 있었으나 흐름상 추후에 삭제되었는데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번 깊이 들여다보고 싶다.
노래와 진법의 흐름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새로운 구성으로 짜였기 때문에 기존의 풍물 진법이나 장단을 그대로 연행하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우선적으로 공연의 성격에 맞는 작품을 만들고 싶은 욕구가 있었기에 다른 공연보다 더욱 많은 연습을 진행하였다. 공연의 완성도도 신경 써야 했지만 연희를 전공한 입장에서 농악의 새로운 형태를 제시하고 싶었기 때문에 이번 소리축제 개막공연의 참여가 매우 뜻깊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사리 끝낸 작업은 2022년 9월 16일 한국소리문화의 전당 모악당에 턴테이블이 돌아가며 그 위에서 연희자의 장단과 몸짓 그리고 소리가 조화를 이루며 준비한 작품이 공연으로 이어지고 관객에게 환호 받는 뜻깊은 시간을 맞이할 수 있었다. 개인적인 프로젝트와 공연들로 매우 바쁜 시간을 보내면서도 결코 포기할 수 없었던 우도 컬렉티브 공연을 마치며 결국 나에게 마지막으로 남겨진 한 가지는 깊이 있는 전통의 뿌리와 연주력 그리고 정체성과 가치를 짚어 볼 수 있는 마음의 눈을 물려주신 스승님에 대한 감사와 좋은 무대를 만들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이들에 대한 감사로 이어지는 것 같다.
ISSUE 2. 김정기 작가님과 함께 한 시간
상상으로 이어진
우리들의 시간 I
2021년 팬데믹이 한창 기승을 부려 2년 가까이 크고 작은 공연이 취소가 되거나 무기한 연장되었지만 해외 공연을 못 가는 것 말고는 기존과 별반 다르지 않게 나만의 활동을 이어가던 참이다.
그러던 어느 날, 부천 국제 만화축제 담당자에게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올해 축제 개막식에서 김정기 작가님과 컬래버레이션으로 무대를 꾸며달라는 섭외 전화였다. 김정기가 누구인가? 아티스트들의 아티스트라고 불리며 라이브드로잉의 선구자인 내가 알고 있는 그 작가님을 말하는 것인가? 영광스러운 무대에 무조건 함께 할 것임을 약속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다가올 공연을 기다렸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그 해의 축제 개막식 공연은 취소되었다. 이쯤 되니 슬슬 약도 오르고 화가 났다. 그동안 많은 공연이 취소되고 기약 없는 답을 기다릴 때는 별다른 감정이 없었는데 이번 공연은 달랐기 때문이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과의 협업뿐만 아니라 이미 TV와 광고에서 그의 이름을 익히 알고 있었고 훨씬 전부터 팬이었기에 이번 공연 취소는 꽤 아쉬움이 컸다. 당시 롯데타워에서 Theother side라는 제목으로 3개월간 진행하였던 전시 마무리를 이틀 앞둔 시기에 나는 무작정 작가님의 전시회를 찾았고 감사하게도 그를 만날 수 있었다. 나의 음반과 소개 자료를 드리기 위해 사인회를 이어가고 있는 작가님을 몇 시간 동안 기다리며 그의 대표 작품을 가까이에서 감상할 수 있었는데 괜히 레전드라 불리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드디어 작가님과 첫 대면을 하고 나의 소개를 하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인사를 하시던 작가님의 모습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우리는 그렇게 첫인사를 나누었고 소속사 김현진 대표님과 함께 오랫동안 이야기 하며 축제가 취소됨을 아쉬워 말고 우리끼리 재미있는 작업을 이어나가자 다짐하였다.
몇 주의 시간이 흐르고 다시 만났을 때는 7시간이 넘도록 서로의 이야기들을 주고받으며 첫 작업을 위한 준비를 시작하였는데 작가님의 그림 실력은 이미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의 상상력에 더욱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이렇게 시작된 우리의 첫 작업은 LANDSCAPE로 취옹 예술관에서 완성되었다. 이른 새벽에 만나 해가 질 때까지 추위와 따사로운 햇살을 번갈아 느끼며 작가님은 그림을 그리고 또 그렸고 나는 장구를 치고 또 쳤다. 그 순간을 떠올리면 참 행복하고 감사한 마음뿐이다.
서로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각자 상상한 데로 하고 싶은 데로 작품을 완성시켜 나갔다. 이 과정을 영상으로 남겨 아트 필름을 만들어 공개하였는데 좋은 결과를 이끌어 내면서 계속해서 다음 작품을 이어나갈 수 있게 되었다.
To be continued in the next issue.

